▶ etc.
쇼쿠쿠로] 당신의 앞에서라면,
Raon씨
2016. 8. 5. 16:41
그만하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
단순하게, 시라이 쿠로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니"
당신을 향한 이 마음을 그만두고 싶어요.
당신을 향한 이 마음은 날이 갈수록 그 고통이 커져가서, 이제는 정말 아픈건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어요.
당신을 향한 이 마음은 언제까지고 보답받지 못하는 짝사랑일테니까. 언제까지고 혼자할뿐인 외사랑인걸 알고있으니까.
당신이 바라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충분히 깨닫고 있으니까.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싫도록 알고있으니까.
당신을 향한 이 마음이 당신에게는 부담이 될 뿐이라는거 질리도록 자각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만할래요.
그러니까, 그만두기로했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이번이 마지막.
"─정말로, 좋아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평소처럼, 장난치듯이, 정말 알아줬으면 하는 속마음을 숨긴체, 언제나처럼, 웃었다.
웃었다고, 생각했다.
웃었을, 것이다.
그도그럴게, 그렇지 않았다면.
눈앞의 소녀는 언제나처럼의 반응으로 얼굴을 붉히며 부정의 대답을 하지 않았을테니까.
그래,
그러니까,
틀림없이 웃었다,
▣
시라이 쿠로코는 미사카 미코토를 피해다녔다.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저지먼트 일은 바빴고, 미코토 본인도 한가한 사람은 아니다.
시간만 잘 맞춘다면 얼굴을 마주 보지 않는것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것을 미코토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아파"
상처가 아프다거나 병에 걸려 아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고통스러워서, 그것이 아프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문득 중얼거린 그것은 속이 텅 빈 거짓말이였다.
절대로 거짓말인 의미없는 중얼거림.
그도그럴것이 시라이 쿠로코는 더 이상 아프지않다.
아플리가 없다.
아파할 그 감각이 마모되어버렸으니까.
마모되어버릴 정도로, 무감각해져버릴 정도로, 시라이 쿠로코는 그 고통을 참아왔으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아플수 없다.
불가능하다.
그것이, 무엇보다 무서웠다.
이대로 가다가 자신은 언젠가 무너져버리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그만두었다.
아프지않게 되었을때, 그만두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을 빌미로, 그만두었다.
그것이 옳다.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사카 미코토를 위해서도, 시라이 쿠로코 본인을 위해서도.
"안녕하세요? 시라이 양"
돌연, 들려온 인사말에 쿠로코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시야에 비치는 것은 반짝이는 금발, 찰랑찰랑한 머릿결은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투명한 피부를 감싼 목이 긴 하얀 장갑과 레이스 무늬의 흰색 스타킹은 별무늬가 프린트 되어있는 가방과 함께 이미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나 다름없다.
"……'
별이 보일듯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시라이 쿠로코를 직시한다.
이 소녀의 이름은 알고있다.
모른다는게 이상하다.
그녀는 이 토키와다이의 여왕님.
아이돌같은 존재다.
토키와다이에서 그녀를 모른다면 그것은 입학하거나 전입한지 얼마안되는 신입생이거나 이 학교의 학생이 아니거나, 그중 하나겠지.
"…쇼쿠호 씨"
제 5위의 레벨 5.
멘탈아웃(심리장악).
쇼쿠호 미사키.
그것이, 눈앞에 있는 소녀의 정체다.
그리고 그 학교의 여왕님&아이돌은 어딘가 뾰루퉁한 얼굴을 한체 말해왔다.
"미사키,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했는데. 여전히 고지식하네, 시라이 양은"
"저에게는 그런 말을 들은 기억조차 없습니다만, 어째서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어야하는건가요"
소소하게 반론해봤지만 눈앞의 능구렁이 여자는 빛나는것 같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 반론을 여유롭게 넘겨버린다.
정말이지, 마음에 안든다. 얄미워.
같은 레벨 5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다른걸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이어진 것은 언제나의 파벌권유에 가벼운 잡담으로, 잡담의 경우에는 어째서 자신에게 와서 떠들고 있는건지 의미를 모르겠다고 시라이 쿠로코는 생각하고 있다.
수다는 그녀의 추종자들이랑 떠들어도 될텐데.
아니, 그 전에 '토키와다이의 여왕님'이 자신에게 직접 파벌의 권유를 하러 오는 것도 의미불명이지만.
아무리 토키와다이 유일의 텔레포터라고는 하지만 자신에게 쇼쿠호가 직접 찾아 올 만큼의 가치는 없을것이다.
보통은 파벌에 속해있는 녀석을 보내 권유할 것이다.
물론 누가와도 파벌권유는 거절해주겠지만. 여왕님의 부탁도 상큼하게 씹어 거절해버리는 것이 쿠로코다. 그런 사람에게 많은것을 바라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것이지만 정말로 파벌에 쿠로코의 이름을 올려놓고 싶은 것이라면 이렇게 귀찮을정도로 권유하해오는 것보다는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도그럴게 그녀는 레벨 5의 멘탈아웃(심리장악), 정신에 대한 간섭은 식은 죽먹기나 다름없다.
자신의 텔레포트로는 그녀의 능력에 저항할수 없으니까, …도망치는것이라면 혹시 모르지만.
그래서 언젠가 한번 그 점이 궁금해서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쇼쿠호 미사키의 대답은 이랬다.
「그래서야 조작해서 사용하는 다른 '말'들이랑 다를바 없으니까, 난 그런 식으로 당신을 얻고 싶은게 아니거든」
뭔 소리냐, 의미를 모르겠다.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버린것은 어쩔수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버린것도 그녀가 쇼쿠호 미사키라는것을 알기 전에 대했던 태도를 그 당시에는 완전히 고치지못했기 때문이였을것이다.
아무튼, 그 얼굴을 보고서 여왕님은 뭐가 재미있었던 것인지 한참을 웃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의미불명이다. 상관은 없지만.
"……그래서 말인데, 시라이 양"
뭐가 '그래서 말인데'인지 듣고있지 않았으니까 모른다.
애초부터 이런, 토키와다이 중에서도 구석진 곳에 자신이 왔던 것은 혼자 있고 싶어서였다. 불청객에 대한 태도로 무시를 선택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멋대로 와서 멋대로 떠든 것은 저쪽, 자신에게 잘못은 없다
없다고 생각한다. 없을것이다. …아마
그런 식으로 쿠로코가 대충 생각하고 있자, 쇼쿠호 미사키가 능청스럽게 말해왔다.
"미사카 양에게는 차였어?"
………패도 되는것일까, 이 망할 여자.
즐겁다는듯 웃으면서 그런걸 물어보지 않았으면 한다.
않았으면 하지만 그런 불만을 말해봤자 소용없다. 오히려 더더욱 정도가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별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네요. 랄까, 짖궂어요"
"응, 알아♪ 알고 있으니까 묻는것인걸~"
악취미다.
"…역시 성격이 안좋다고 생각되는데요. 당신"
"그래서, 차였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오는구만.
말하기 싫어하는걸 알고있으면서도 일부러 물어온다는게 더 얄밉다.
패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쿠로코는 입을 연다.
"…차였다면요?"
"내가 받아줄께"
"거절합니다"
"우와, 즉답"
상처받았어?
히죽히죽 웃으면서 그렇게 덧붙여도 신빙성은 없다.
역시, 이 사람은 그녀와 다르다.
자신에 대해 걱정같은건 하지않는다.
걱정은 커녕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일것이다.
자신이 유일한 텔레포터가 아니였다면 접점조차 없었다.
그저 그것뿐인 관계다.
이용할 생각 뿐,
거정같은건 하지않는다.
서로 믿지 않기에 의심밖에 할수 없으니까, 상처받을 일도 없다.
강한척 허세를 부려도, 그녀의 능력앞에선 무용지물.
전부 들켜버린다.
그러니까,
당신의 앞에서라면 울수있을지 모른다고.
시라이 쿠로코는 잠시 생각했다.